우리의 질염 이야기

by 해피문데이
201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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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질염을 처음 겪었던 때의 당황스러움이나 무지함에 대한 기억들

    A : 가장 처음으로 이 녀석을 만났던 때는 고등학생 때였다. 하교 이후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학원과 독서실.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면 이런 일정들에 익숙해질 수 밖에 없었던 시절, 내 몸은 그렇지 못했다. 꽉 조인 교복 치마에 통풍이 잘되지 않는 삼각팬티, 학생용 스타킹에 속바지에 위생을 신경 쓰기 힘들었던 스케줄까지. 질염이 발생하기 굉장히 좋은 환경이었다.

    B: 이십 대 중반까지는 질염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결혼하고 부부관계를 시작하면서 뭔가 가려움증과 분비물이 동반된 불편한 증세가 찾아왔다. 그때는 대학원 석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제때 못 먹고, 자주 밤을 새우는 등 불규칙한 생활을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영향도 컸다. 질염이 심해지면 곧바로 방광염이 되었다. 소변볼 때 타는 듯한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C: 초등학교 4학년. 나는 피아노보단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라댔고 여름이 다가오던 무렵 엄마의 손을 잡고 동네 삼천리 자전거가게로 가 파란색의 멋진 두발자전거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학원이 끝나면 동네방네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다 저녁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얼마 후, 그 곳이 쓰라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갔고, 그때가 내 첫 산부인과 방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자전거를 당분간 타지 말라는 엄벌을 내리셨다.

    D: 내가 ‘질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23살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였다. 겁에 질려있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질염’과의 사투를 예고했다. '스물셋'에 처음 산부인과를 찾았을 만큼 그때의 나는 내 몸에 참 무지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당당하게 들락거리는 곳이지만 여전히 산부인과는 두렵고 어려운 존재다. 감기처럼 쉽게, 자주 걸리는 게 질염이라지만 ‘나 질염 걸렸어!’라고 주위에 내 속 사정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불쾌한 손님이다. 사람들은 감기보다 ‘질염’이란 단어에 불순한 생각들을 많이 섞는 것 같다.

    E: 처음 질염을 앓게 된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지나치게 딱 붙는 스키니진을 입고 사타구니를 압박하였던 그 날인지, 대중목욕탕에서 한참을 몸을 지졌던 그 날인지, 아니면 손으로 즐거움을 주었던 그 날인지, 아니면 그냥 몸이 너무 피곤해서 면역력이 떨어졌던 그냥 그저 그런 날 중 하루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번 나타난 이후로 질염은 병원에서, 여자들끼리 흔히 말하는 것처럼 '감기'마냥 자주 찾아왔다.

    F: 어린 시절의 어느 습한 여름. 불현듯 아래쪽이 가렵거나 따갑기 시작했고, 팬티를 내리면 탁한 우윳빛 색깔의 냉이 찐득하니 붙어 나를 불쾌하게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팬티 속의 사정에 대해 당시의 나는 무지함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하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과거의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할 순간이었다. 야. 걔 진짜 끈질겨.

  2. 질염의 증상과 그에 따른 느낌, 기분, 생각들. 행동들

    G: 보지를 뒤집어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에 번갈아 가며 박박 씻어내고 싶을 만큼의 가려움과 냄새, 소변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짜릿한 고통을 참다못해 산부인과를 찾아갔고, 나는 꼭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H: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질환이기 때문에 얼마 되지 않는 진료비를 내고 처방받은 약을 들고 왔다. 먹는 약과 바르는 연고 종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내가 생긴 질염 균에 사용하는 약이 무좀에 사용하는 약과 같은 종류의 것이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세상에. 그렇게 간지러운 데는 이유가 있었단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I: 소녀시대의 gee가 나오면서 전국에 스키니진 열풍이 불었고 나는 그에 동참하고 말았다. 꽉 끼는 스키니진을 입고 온종일 앉아 일했던 날들. 부서이동과 야근까지 닥친 그때. 남자친구와의 잦은 싸움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다 달았던 그때는 분비물은 물론 냄새까지…. 팬티 라이너를 하루에 7~8개씩 써도 해결되지 않았고, 그 좋다던 청결제들도 소용이 없었다. 혹여나 다른 이에게 냄새가 날까 봐 회사에 팬티를 챙겨와 입었던 팬티를 봉지에 싸서 버린 적도 있었다. 거기다 방광염까지 생겨 삶의 질이 떨어지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끙끙거리며 찾은 산부인과에서는 약 처방과 함께 스트레스와 체력관리로 면역력을 높이고, 염증을 다스리는 음식 섭취를 권유했다.

    J: 성인이 된 후 ‘이 녀석’은 비교적 나를 자주 찾아왔다. 이유는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때문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콘돔을 사용하고 청결을 유지했음에도 ‘이 녀석’은 나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중요 부위가 가렵더니,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점점 눈에 확연히 보이는 증상이 나타났다. 머리가 큰 후로도 산부인과라는 곳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던 곳이라, 여전히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증상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제야 산부인과를 찾았다.

  3. 산부인과 진료의 경험들

    K: 질염에 걸리면 상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얼른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해야 하지만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다.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원인을 의심해 '균 검사’를 하고 거기에 이것저것 어렵고 걱정스러운 용어들이 더해져 다른 검사들까지 권유받는다. 자궁경부암, 초음파 검사 등 조용히 설명을 듣고 있자면 ‘그래도 전 검사가 필요 없습니다!’고 외칠 사람 많지 않을 것이다. 부담스러운 검사비에 잠시 망설이다가도 곧 ‘나에게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검사에 응하게 되는 것이다. 항상 ‘이상이 없다’는 반가운 답변으로 돌아오지만 10만 원이 넘는 검사료에 항상 찝찝함이 뒤따른다. 지갑은 가벼워졌어도 몸에 문제가 없는 걸 확인했으니 다행이지 싶어 마음을 달래본다.

    L: 아래가 뻥 뚫린 진료용 치마를 입고, 진료대에 올랐다.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여성분이었고 프로페셔널하게 대해주셨기 때문에, 진료 자체는 신속히 종료되었다. 하지만 환부를 닦고, 질경을 사용해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모든 행위가 그냥 의료적인 처치일 뿐이라고 생각은 들면서도 왠지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치료를 받은 지 대충 4일 정도가 지난 뒤, 나를 괴롭히던 질염은 거짓말같이 나아졌다. 가렵지 않으면 산부인과에 더 오지 않아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는데, 기쁜 건 당연히 질염이 나아서, 슬픈 건 이제 진료를 핑계로 학원을 빼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M: 산부인과라는 곳이 참 애증의 존재이다. 경험자로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들은 우리들의 소중한 곳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잘 치료해 줄 수 있는 분들이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치료받으러 가면 된다. 나 또한 산부인과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에는 뭔가 불편하고, 뭔가 찝찝하고, 뭔가 가기 싫었다. 하지만 불편하고 찝찝하고 가기 싫을 이유가 전혀 없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서 내과 의사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는 것과 같다. 질염이 찾아오면 산부인과에 가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으면 된다. 남자 의사 선생님들이 불편하면, 여자 의사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으면 된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여자 의사 선생님이 진찰을 보는 산부인과에 방문하면 되는 것이다.

  4. 예방을 위한 노력들

    N: 질염 예방을 위해 내가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될 수 있으면 팬티라이너 쓰지 않기, 면 속옷을 입고 자주 갈아입기, 스타킹 등 꽉 끼는 옷 입지 않기, 고함량의 유산균 챙겨 먹기, 크랜베리 영양제 챙겨 먹기, 설탕 줄이기 등이다. 유산균이나 크렌베리 영양제는 매일 먹지는 않지만, 뭔가 불편한 증세가 나타날 때 먹으면 효과를 본다.

    O: 자신의 생식기를 한 번 볼 것. 의외로 없는 듯 있는 상황인데, 음순의 비대칭으로 한쪽 음순이 다른 쪽보다 크면 큰 음순이 덮이면서 습해지고, 균이 번식하기 쉬워지고, 말인즉슨 덩달아 곰팡이성 질염이 문을 벌컥 열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가 균형을 맞추는 시술을 받아보길 추천한다. 아랫도리에게 자유를 주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 나는 가끔 파자마 아래의 노팬티로 집에서 뒹굴기도 한다. 청결도 중요하다. 너무 자주, 안쪽까지 씻기보단 주기적으로 씻자. 사람마다 다르다지만 공통적으로 중요한 면역력과 영양. 충분한 휴식과 유산균, 비타민도 분명 도움이 된다. 특히 몸과 마음이 고속도로로 연결된 사람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P: 인터넷의 힘을 빌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기 시작했다. 자궁에 좋은 유산균 챙겨 먹기. 여성청결제는 일주일에 2~3번만. 물로만 씻고, 차가운 바람으로 말려주기. 하체가 편안한 옷을 입고, 집에서는 팬티 착용하지 않기. 인터넷에서 팬티를 모두 100%면, 큰 사이즈로 20장을 주문해서 베이킹소다와 식초만으로 세탁을 했고, 햇볕에 바싹 말려주었다. 생리대는 성분이 좋은 제품으로, 집에서는 패드형 아기 기저귀를 사용했고, 염증에 좋은 각종 차와 음식을 자주 챙겨 먹었다. 냄새가 걱정될 때는 유기농 페퍼민트 오일을 팬티에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었다. 유산균은 만 원대부터 5만 원대까지 비싼 걸 먹어도 크게 좋아지진 않았지만, 몇 년째 6개월에 한 번씩 유산균 종류를 바꿔가며 꾸준히 섭취하고 있다.

    Q: 물론 위생상의 문제도 아예 없다고 하진 못하겠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관리를 못 한 때 뿐만 아니라 통풍이 되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 우연히 간 공중목욕탕에 심한 곰팡이성 질염(...)을 앓고 있는 사람과 같은 탕을 사용했을 때, 그냥 피곤해서 면역력이 저하되었을 때 감기처럼 질염이 온다고. 그건 때론 간지럽기도 하고, 때론 냄새가 나거나 색이 누런 냉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때론 바늘로 소음순을 쿡 찌르는 듯한 통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걸 알아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기며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고, 나의 그곳에 습기가 차지 않게 잘 건조해준다.

    R: 넉넉하고 통풍이 잘되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조언에 따라 나는 꽉 조이는 교복을 등교 할 때만 입었고, 안에는 속바지 대신에 짧은 운동용 숏팬츠를 구해다 입었다. 평상시에도 거의 바지만을 입고 살았었지만, 질염에 걸린 이후로 롱스커트를 구해다 입었다.

    S: 가장 효과를 본 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피곤에서 벗어나는 건데, 오래 앉아있지 않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직장을 관두고 6개월가량 여행을 다니며 쉴 때는 질염이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해야 하는 우리 나이대 여성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처방이다.

  5. 지금은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들, 당부의 말

    T: 내 경우는 일 년에 감기가 걸리는 텀과 비슷하게, 질염이 재발하곤 한다. 재발할 때마다 인생에 대한 약간의 회의감에 시달린다. 마치 생리가 찾아오는 것처럼. 그러나 감기에 좋아서 걸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질염도 마찬가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한 지 꽤 오래 지나버렸다. 또 진료를 받고 약 먹으면 지나가겠거니. 이 또한 4일 안에, 가장 괴로운 시기가 지나가리라.

    U: 지금도 한 달에 1번은 꼭 찾아오는 질염이지만, 꾸준하게 관리를 하다 보니 증상이 약하게 오는 편이다. 완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평생 따라다닐 이 녀석이 화내지 않게 살살 달래줘 보기로 했다. 내가 잘할게. 화내지 마.

    V: 이렇게 자주 앓고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질병이니 수치스러워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당당하게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W: 다년간의 질염 극복을 위한 노력으로 예전보다 발병 횟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유산균을 빠짐없이 챙겨 먹는 일, 적당한 기간을 두고, 안전한 성분을 꼼꼼히 확인한 청결제로 잘 관리해주는 일, 성관계 전 상대방의 청결을 체크하는 일까지. 차마 Y 존 왁싱까지는 못하고 있지만, 나의 질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 여간 번거롭고 귀찮다. 참으로 피곤하지만, 그보다 더 번거로운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언젠가 찾아올 이너피스를 위해 오늘도 나는 유산균 한 봉지를 입속에 털어 넣는다.

    X: ‘질염’이라는 녀석은 ‘친하지 않은 친구’와 같이 요즘도 나를 종종 찾는다. 이제 나는 이 녀석을 적당히 다스릴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을 쌓은 것 같다. 이 글을 읽게 되는 여러분도 이 녀석을 정복하려 하지 말고, 다스릴 수 있는 정도의 내공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Y: 나와 질염의 밀당은 끝났느냐, 하면 우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무리 감기를 대비해도 때가 되면 걸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팬티 속의 감기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삼 개월에 한 번을 반년에 한 번으로, 오래 갈 것을 조금은 빨리 낫도록, 적과의 동침마냥 질염과의 눈치싸움을 얼마나 현명하게 이어가느냐가 쟁점이 아닐까 한다.

    Z: 질염은 많은 여성이 너무나 흔히 앓는 질병이다. 별 것 아니라고 방치해두기엔 생활에 적잖은 고통을 주고, 항생제로 해결하는 것도 그때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몸이 건강해지면 감기에 쉽게 걸리지 않는 것처럼 질염 역시 결국 생활습관과 면역력 싸움임을 이제 경험으로 알겠다.

  6. 마치며

    독자 기고를 기획하면서, 주제 선정 과정에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모았을 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정말 질염에 대해 듣고 싶어 하고 말하고 싶어 할까. 질염 치료, 극복, 적응, 혹은 실패의 경험들이 모이면 어떤 효과가 생길까. 성공적 치유의 경험이나 질병 극복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아닌, (실패와 체념, 어쩌면 분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질병 자체의 경험들을 공유하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힘이 될까.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기꺼이 나눠주었고, 과거의 자신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 했어요.

    아, 질염이라면 또 내가 할 말이 많지.

    그건 아마도 어떤 아쉬움 때문인 것 같았어요.

    질염이 질염인 줄 몰랐던 날들엔 여기가, 아래가 가려워요. 말하기도 부끄럽고, 내 위생 상태에 의심이 가고, 스스로가 불결하게만 느껴졌다.

    이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참고 혼자 열심히 물로 씻어만 대며 견디다가 나의 질염은 방광염과 골반염으로 심화되었다.

    이제 나는 질염이 찾아와도 ‘아, 또 찾아왔구나’ 라며 넘길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학생이었을 때 ‘이 녀석’이 한 번씩 찾아오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인터넷을 뒤적였던 경험이 있다.

    지금 알았던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리고 또, 어떤 마음들이기도 했어요.

    나는 혼자서 몇 번을 앓은 후에야 병원을 통해 듣게 되었다. 여성들에게 아주 아주 흔한 병이라는 '질염'이라는 게 있다는 걸.

    당신이 겪는 것은 단순한 가려움이 아니라 감기와 같은 병이고, 초기에 치료받으면 금방 회복할 수 있는 병이라는 걸, 성병이 아니고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상대방이 가문의 원수이든 오늘 처음 본 여자든 상관없는, 갑자기 길거리에서 월경을 시작했다는 그의 생리대를 구해다 주고 싶어지는 마음. 필요하다면 속옷도 사다 줄 수 있고, 물티슈는 안 필요한지 걱정되는 그 마음. 너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가 되는 그런 마음 말이죠.

    질염으로 고생하는 자매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이 자리를 빌려 마음과 경험, 시간을 나누어주신 모든 기고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기고문이 인용되신 프로골골러 님, 익명의 Y님, 시에나 님, 마니또 님, 김이림 님, 치즈버거 님, 강마 님께는 소정의 선물을 보내드렸습니다.)

  7. 독자 기고문 전문

    어린 시절의 어느 습한 여름. 불현듯 아래쪽이 가렵거나 따갑기 시작했고, 팬티를 내리면 탁한 우윳빛 색깔의 냉이 찐득하니 붙어 나를 불쾌하게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팬티 속의 사정에 대해 당시의 나는 무지함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하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과거의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할 순간이었다. 야. 걔 진짜 끈질겨.

    녀석은 불청객이었다. 개중에서도 민망한 불청객이었으니, 스트레스나 과로가 이어질 때면 어김없이 아랫도리를 두드리던 녀석의 이름을 알게 된 것조차 그로부터 십여년은 지나서였다. 물론 그 민망함도 처음 병원에 갔을 때의 민망함과 비교할 수는 없다. 성관계의 유무부터 대뜸 묻던 의사의 눈에서는 문란함에 대한 무언의 질책이 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내가 산부인과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요컨대 사회가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병리학적인 이야기를 시작할 때 즈음이라든가 산부인과에서 여아를 자녀로 둔 어머니를 위한 일일교실이 열려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올 때까지 말이다. 게다가 얼굴에 철판을 깔만한 나이가 되니 내 질이 불청객을 만났다는데 내가 왜 내 돈을 내고 움츠러드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산부인과가 낯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조심스러운 누군가가 있다면, 이 긴 불청객에 대한 경험담을 은근슬쩍 건네고 싶다. (일단은 성교와 상관없는 최소한의 대비책으로 말이다)

    먼저 습도. 꽉 끼는 옷이나 속옷, 환기가 되지 않는 환경을 돌아보기. 특히 생리기간이라면 더할 것이다. 그리고 별개로 자신의 생식기를 한 번 볼 것. 의외로 없는 듯 있는 상황인데, 음순의 비대칭으로 한쪽 음순이 다른 쪽보다 크면 큰 음순이 덮이면서 습해지고, 균이 번식하기 쉬워지고, 말인즉슨 덩달아 곰팡이성 질염이 문을 벌컥 열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가 균형을 맞추는 시술을 받아보길 추천한다.

    청결도 중요하다. 너무 자주, 안쪽까지 씻기보다는 주기적으로 씻되 충분히 보송보송할 수 있도록 아랫도리에게 자유를 주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 나는 가끔 파자마 아래의 노팬티로 집에서 뒹굴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다지만 공통적으로 중요한 면역력과 영양. 충분한 휴식과 유산균, 비타민도 분명 도움이 된다. 특히 몸과 마음이 고속도로로 연결된 사람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면 이렇게 미주알 고주알 신경쓰는 나와 질염의 밀당은 끝났느냐, 하면 우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무리 감기를 대비해도 때가 되면 걸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팬티 속의 감기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삼 개월에 한 번을 반 년에 한 번으로, 오래 갈 것을 조금은 빨리 낫도록, 적과의 동침마냥 질염과의 눈치싸움을 얼마나 현명하게 이어가느냐가 쟁점이 아닐까 한다. 이 지긋지긋한 녀석을 나는 감기 투라고 부른다.

    코드네임 감기 투, 이미 돌봐야 할 부분이 많은 육신이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신경 쓰게 하는 오랜 불청객. 만나지 않았다면야 더 좋았겠지만 어디선가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 오늘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사람이 나야 나.

    초등학교 4학년. 나는 피아노보단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라댔고 여름이 다가오던 무렵 엄마의 손을 잡고 동네 삼천리 자전거가게로 가 파란색의 멋진 두발 자전거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학원이 끝나면 동네방네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다 저녁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얼마 후,그 곳이 쓰라리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갔고, 그때가 내 첫 산부인과 방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자전거를 당분간 타지 말라는 엄벌을 내리셨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앉아 일하며 피로에 찌들어가던 때 냄새가 나는 분비물이 보이는 날이 잦아졌지만, 너무 일찍 산부인과 굴욕의자를 맛본 탓일까, 산부인과가 너무 무서웠던 나는 약국에서 청결제를 구매했다. 매일 아침,저녁 난 깔끔한 여자니까 청결제 팍팍써서 깨끗하게 씻자!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나름 편한 업무의 부서로 이동을 하고, 마음이 편한 탓인지 직장에 다니는 것이 괴롭지 않았던 잠깐동안 분비물이 보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것도 몇 달. 소녀시대의 gee 가 나오면서 전국 스키니진 열풍이 불고 그에 동참하고 말았다. 꽉 끼는 스키니진을 입고 온종일 앉아 일했던 바보 같은 짓 두 번째. 부서이동과 야근까지 닥친 그때. 남자친구와의 잦은 싸움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다 달았던 그때는 분비물은 물론 냄새까지…. 팬티라이너를 하루에 7~8개씩 써도 해결되지 않았고, 그 좋다던 청결제들도 소용이 없었다. 혹여나 다른이에게 냄새가 날까봐 회사에 팬티를 챙겨와 입었던 팬티를 봉지에 싸서 버린 적도 있었다. 거기다 방광염까지 생겨 삶의 질이 떨어지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끙끙거리며 찾은 산부인과에서는 약 처방과 함께 스트레스와 체력관리로 면역력을 높이고, 염증을 다스리는 음식 섭취를 권유했다. 그 날부터 인터넷의 힘을 빌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기 시작했다.

    자궁에 좋은 유산균 챙겨먹기. 여성청결제는 일주일에 2~3번만. 물로만 씻고, 차가운 바람으로 말려주기. 하체가 편안한 옷을 입고, 집에서는 팬티 착용하지 않기. 인터넷에서 팬티를 모두 100%면, 큰사이즈로 20장을 주문해서 베이킹소다와 식초 만으로 세탁을 했고, 햇볕에 바싹 말려주었다. 생리대는 성분이 좋은 제품으로, 집에서는 패드형 아기기저귀를 사용했고, 염증에 좋은 각종 차와 음식을 자주 챙겨 먹었다. 냄새가 걱정될 때는 유기농페퍼민트 오일을 팬티에 한방울 씩 떨어뜨려 주었다.

    유산균은 만원대부터 5만원대까지 비싼 걸 먹어도 크게 좋아지진 않았지만, 몇 년째 6개월에 한번 씩 유산균 종류를 바꿔가며 꾸준히 섭취하고 있다. 그리고 증상이 아주 심할 때는 병원에 가서 주사,약,질정제로 치료를 받았다.

    가장 효과를 본 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피곤에서 벗어나는 건데, 오래 앉아있지 않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직장을 관두고 6개월 가량 여행을 다니며 쉴 때는 질염이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해야 하는 우리 나이대 여성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처방이다.

    지금도 한 달에 1번은 꼭 찾아오는 질염이지만, 꾸준하게 관리를 하다 보니 증상이 약하게 오는 편이다. 완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평생 따라다닐 이 녀석이 화내지 않게 살살 달래줘 보기로 했다.

    내가 ‘질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23살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였다. 겁에 질려있는 나에게 의사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질염’과의 사투를 예고했다. '스물셋'에 처음 산부인과를 찾았을 만큼 그때의 나는 내 몸에 참 무지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당당하게 들락거리는 곳이지만 여전히 산부인과는 두렵고 어려운 존재다. 감기처럼 쉽게, 자주 걸리는 게 질염이라지만 ‘나 질염 걸렸어!’라고 주위에 내 속 사정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불쾌한 손님이다. 사람들은 감기보다 ‘질염’이란 단어에 불순한 생각들을 많이 섞는 것 같다.

    질염에 걸리면 상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얼른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해야 하지만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다. 감기처럼 진료받고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며칠 고생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원인을 의심해 '균 검사’를 하고 거기에 이것저것 어렵고 걱정스러운 용어들이 더해 다른 검사들까지 권유받는다. 자궁경부암, 초음파 검사 등 조용히 설명을 듣고 있자면 ‘그래도 전 검사가 필요 없습니다!’고 외칠 사람 많지 않을 것이다. 부담스러운 검사비에 잠시 망설이다가도 곧 ‘나에게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검사에 응하게 되는 것이다. 항상 ‘이상이 없다’는 반가운 답변으로 돌아오지만 10만 원이 넘는 검사료에 항상 찝찝함이 뒤따른다. 지갑은 가벼워졌어도 몸에 문제가 없는 걸 확인했으니 다행이지 싶어 마음을 달래본다.

    하지만 마인트 컨트롤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질염을 확진 받으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굴욕 의자에 무방비로 누워있는 나에게 갑자기 질정이 들이닥칠 때 그 기분이 절정에 달한다. 놀란 마음 다독이며 속옷도 입지 않고 앞뒤가 뻥 뚫린 보자기만 허리에 두른 채 의자에서 내려오면 간호사가 무심히 건네주는 일회용 팬티라이너를 받아들고 와르르 무너진다. 아무리 효과가 좋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드러온 아이가 며칠간 쏳아져 내릴(?) 흰색의 약들을 또 참아내야 하다니... 커튼으로 가려진 한쪽 구석에서 바지 지퍼를 올리며 애써 밝은 얼굴을 찾아야 한다.

    굴욕을 견디며 치료를 받으면서도 참 답답한 건 정확한 발병 원인도, 예방책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질염의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고, 아무리 조심해도 청결, 면역, 균 발렌스, 컨디션 중 하나라도 놓치면 금방 다시 찾아오니, 도대체 이 친구를 피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한지 궁금하다. 하다못해 나의 자유분방한 Y존의 털들조차 그 원인이 될 수 있다니… 이제는 공중 화장실에 걸려있는 휴지를 쓸 때조차 ‘혹시나’하는 걱정이 앞서곤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렵고 번거로운 일 투성이니 이제는 질염이 찾아와도 '잘 쉬고, 잘 관리하면 다시 낮겠지..’ 싶은 생각에 병원을 가는 것을 망설이곤 한다. 요즘 주위에 과잉진료 없이 믿고 다닐만한 산부인과를 찾는 것도 너무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1시간 이상 기다려 들어간 진료실에서 설명도 없이 쥐여주는 항생제를 삼킬 때면 자괴감마저 든다. 정말 감기처럼 마스크를 쓰고 찜질을 해주고 비타민을 챙겨 먹으면 피해 갈 수 있는 확실한 예방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년간의 질염 극복을 위한 노력으로 예전보다 발병 횟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유산균도 빠짐없이 챙겨 먹는 일, 적당한 기간을 두고, 안전한 성분을 꼼꼼히 확인한 청결제로 잘 관리해주는 일, 성관계 전 상대방의 청결을 체크하는 일까지. 차마 Y존 왁싱까지는 못하고 있지만 나의 질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 여간 번거롭고 귀찮다. 참으로 피곤하지만 그보다 더 번거로운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언젠가 찾아올 이너피스를 위해 오늘도 나는 유산균 한 봉지를 입속에 털어 넣는다.

    지금이야 나이도 들만큼 들었고 적절한 지식이 생겨 질염이라는 질병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에 질염이 재발하여도 민망함이 덜하지만, 가장 처음으로 이 녀석을 만났던 때는 고등학생 때였다. 하교 이후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학원과 독서실...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면 이런 일정들에 익숙해질수 밖에 없었던 시절, 내 몸은 그렇지 못했다. 꽉 조인 교복치마에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삼각 팬티, 학생용 스타킹에 속바지에 위생이 신경쓰기 힘들었던 스케줄까지. 질염이 발생하기 굉장히 좋은 환경이었다.

    무척 더웠었던 어느날의 여름 날, 하반신의 소양감을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던 나는 교복을 갈아입고 체육복을 입은 채 산부인과로 향했다. 집안 식구들 중 의료인이 있어 병원에 가는 일은 익숙했지만 그 시절에도 교복을 입고 산부인과에 간다는 것이 좀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갈아입고 방문하였는데 회상해보니 나는 그냥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아닌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일 뿐이었다. 상가에 구석에 있던 산부인과로 들어선 나는 접수처에 접수를 하며 왠지 모를 겸연쩍음을 느꼈다. 나의 경우에는 초진이었기 때문에 병원에 따로 마련된 곳으로 가서 면담을 했었는데, 특히 성관계 유무를 묻는 부분에서는 대충 얼버무렸었던 기억이 든다. 민망해서.

    아래가 뻥 뚫린 진료용 치마를 입고, 진료대에 올랐다. 의사선생님도 간호사선생님도여성분에 프로페셔널하게 대해주셨기 때문에 진료 자체는 신속히 종료되었다. 하지만 환부를 닦고, 질경을 사용해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모든 행위들이 그냥 의료적인 처치일 뿐이라고 생각은 들면서도 왠지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너무 인생을 막 살아서 이 나이에 산부인과까지 오게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질환이기 때문에 얼마 되지 않는 진료비를 내고 처방받은 약을들고 왔다. 먹는 약과 바르는 연고종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내가 생긴 질염균에 사용하는 약이 무좀에 사용하는 약과 동일한 종류의 것이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세상에...그렇게 간지러운데는 이유가 있었단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넉넉하고 통풍이 잘되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조언에 따라 나는 꽉 조이는 교복을 등교 할때만 입었고, 안에는 속바지 대신에 짧은 운동용 숏팬츠를 구해다 입었다. 평상시에도 거의 바지만을 입고 살았었지만 질염에 걸린 이후로 롱 스커트를 구해다 입었다. 그 경험은 내가 교복이 아닌 다른 종류의 치마를 입은 처음의 경험이 되었고 이렇게 질염은 내 안의 패션의 경향조차 바꾸어버렸다.

    치료를 받은지 대충 4일 정도가 지난 뒤, 나를 괴롭히던 질염은 거짓말같이 나아졌다. 가렵지 않으면 산부인과에 더 오지 않아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는데, 기쁜 건 당연히 질염이 나아서, 슬픈 건 이제 진료를 핑계로 학원을 빼먹을수가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 것이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이 할법한 발상인 것이다.

    내 경우는 일년에 감기가 걸리는 텀과 비슷하게, 질염이 재발하곤 한다. 재발 할때마다 인생에 대한 약간의 회의감에 시달린다. 마치 생리가 찾아오는 것처럼. 그러나 감기에 좋아서 걸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질염도 마찬가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한지 꽤 오래 지나버렸다.

    또 진료를 받고 약먹으면 지나가겠거니. 이 또한 4일안에, 가장 괴로운 시기가 지나가리라.

    며칠 전, 여느 때처럼 인스타그램을 넘겨보다가 해피문데이 피드를 보게 되었다. 질염에 대한 기고문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아, 질염이라면 또 내가 할 말이 많지. 지긋지긋한 질염, 만성이 된 허리통증과 함께 늘 조심하고 있는 부분이 질 건강이다. 이십 때 중반까지는 질염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결혼하고 부부관계를 시작하면서 뭔가 가려움증과 분비물이 동반된 불편한 증세가 찾아왔다. 그 때는 대학원 석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제 때 못 먹고, 자주 밤을 새는 등 불규칙한 생활을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영향도 컸다. 질염이 심해지면 곧바로 방광염이 되었다. 소변 볼 때 타는 듯한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방광염으로 발전하기 전에 항생제를 투여해야 했다. 그래도 먹으면 그 때뿐, 생리주기를 따라 거의 매달 재발했다. 항생제를 계속 먹을 수도 없고,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면생리대를 만나게 되었다. 잔잔한 꽃무늬 천에 보드라운 순면. 순면느낌이 아니라 진짜 순면이었다. 소형, 중형, 대형, 오버나이트, 팬티라이너까지 사이즈도 다양했다. 가격이 비쌌지만 몇 개 사서 써보았다. 처음에는 많이 불편할거라 생각했는데 써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생리혈이 빠지도록 물에 담가두고 모아두었다가 한 번에 세탁하는 요령도 생겼다. 면생리대를 쓰면서 생리 끝 무렵 꼭 찾아오던 가려움증과 냄새가 거의 없어지는 걸 알게 되었다. 질염에 걸리는 횟수도 점차 줄었다. 그러나 면생리대는 집에서는 괜찮지만, 외부에 있거나 특히 여행을 갔을 때는 너무 불편했다. 그럴 때면 다시 일회용 생리대를 썼는데, 하루 정도는 괜찮지만 이틀 이상 넘어가면 꼭 따끔거리고 가려운 증세가 나타났다.

    그렇게 생리대 유목민으로 살다가 해피문데이를 만났다. 성분을 보니 정직하고 안전하게 만든다는 확신이 들었다. 샘플을 받아 사용해보니 며칠 연달아 사용해도 불편한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 너무 신기했다. 일회용 생리대도 괜찮을 수 있구나. 역시 생리대는 여성의 질 건강과 직결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밤이나 집에 있게 되는 날은 면 생리대를 쓰고, 외부일정이 있는 날은 해피문데이 생리대를 쓰는데, 이 조합이 나에게는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내가 생활하기에도 덜 불편하고, 지구에게도 덜 미안한 선택이다.

    생리대 외에도 질염예방을 위해 내가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가급적 팬티라이너 쓰지 않기, 면 속옷을 입고 자주 갈아입기, 스타킹 등 꽉 끼는 옷 입지 않기, 고함량의 유산균 챙겨먹기, 크랜베리 영양제 챙겨먹기, 설탕 줄이기 등이다. 유산균이나 크랜베리 영양제는 매일 먹지 않지만, 뭔가 불편한 증세가 나타날 때 먹으면 효과를 본다. 유산균은 질 내 유익균을 늘려 혐기균과 싸우도록 도와주고, 크랜베리 영양제는 방광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당을 많이 섭취하면 혐기균의 먹이가 된다고 하여 설탕을 줄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질 건강에 도움을 준다.

    질염은 많은 여성들이 너무나 흔히 앓는 질병이다. 별 것 아니라고 방치해두기엔 생활에 적잖은 고통을 주고, 항생제로 해결하는 것도 그 때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몸이 건강해지면 감기에 쉽게 걸리지 않는 것처럼 질염 역시 결국 생활습관과 면역력 싸움임을 이제 경험으로 알겠다. 질염으로 고생하던 이십대 후반에 이런 정보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항생제에만 의존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질염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고 늘 질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질염 극복기가 아니라 투쟁기라 이름 붙여본다. 질염으로 고생하는 자매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나에게 질염은 ‘친하지 않은 불편한 친구’ 같은 존재이다. 현재 나는 질염이 찾아와도 ‘아, 또 찾아 왔구나’ 라며 넘길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학생 신분이었을 때 ‘이 녀석’이 한번 씩 찾아올 때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인터넷을 뒤적였던 경험이 있다.

    성인이 된 후 ‘이 녀석’은 비교적 나를 자주 찾아왔다. 이유는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때문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콘돔을 사용하고 청결을 유지했음에도 ‘이 녀석’은 나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중요부위가 가렵더니,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점점 눈에 확연히 보이는 증상이 나타났다. 머리가 큰 후로도 산부인과라는 곳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던 곳이라, 여전히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증상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제야 산부인과를 찾았다.

    역시나 ‘질염’이었다. 하지만 산부인과는 나에게 ‘질염’과 더불어 ‘자궁 용종’이 발견되어 용종 제거 후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결과를 내주었다. 그 당시 나는 20대 후반이었다. 머리가 컸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머리만 컸고 마음은 콩알만 했다. 단순히 질염이라고만 생각하고 계속 인터넷만 뒤적거리고 있었다면, 내 소중한 곳에 ‘용종’ 이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조직검사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참 더디게 흘렀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양성이었다. 용종은 제거했고, 나에겐 질염의 치료가 남아있었다.

    질염은 말 그대로 여성의 외음부인 질이 균에 감염되어 염증이 발생한 것이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지만, 여성의 감기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가장 흔한 질 감염은 세균성 질염, 트리코모나스 질염, 칸디다스 질염이고, 내가 겪었던 질염은 세균성 질염이었다. 이 질염의 치료는 항생제 치료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나 역시도 질정과 항생제를 사용하여 ‘이 녀석’을 다스려야 했다. 여성의 감기와 같은 존재로 증상이 심하지 않을 경우 모르고 지나치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스쳐가는 가벼운 감기로 여기다가 폐렴으로 더 악화되는 경우가 있듯이, 이 질염 녀석 또한 그냥 스쳐가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좋지 않다. 내 소중한 곳이 예전과 같지 않은 가려운 증상을 나타내거나, 내 소중한 곳에서 나온 ‘질 분비물’이 조금 이상한 냄새, 조금 이상한 모양새를 보인다면 이는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지 않아도 내 몸이 ‘이상 증세’를 느끼는 것이다. 때문에 반드시 산부인과에서 진찰을 받아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산부인과라는 곳이 참 애증의 존재이다. 경험자로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선생님들은 우리들의 소중한 곳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잘 치료해 줄 수 있는 분들이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치료받으러 가면 된다. 나 또한 산부인과를 처음 방문 했을 당시에는 뭔가 불편하고, 뭔가 찝찝하고, 뭔가 가기 싫었다. 하지만 불편하고 찝찝하고 가기 싫을 이유가 전혀 없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서 내과의사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는 것과 같다. 질염이 찾아오면 산부인과에 가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으면 된다. 남자 의사 선생님들이 불편하면, 여자 의사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으면 된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여자 의사선생님이 진찰을 보는 산부인과에 방문을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그것도 여성의 가장 소중한 부위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병원에 찾아가지 않는다면, 나처럼 ‘용종’의 존재를 모르고 지나칠 소지가 다분하다. 우리 몸이 정기적인 검진을 요하듯이, 우리의 소중한 그곳도 정기적인 진찰이 필요한 부위임을 명심해주길 바란다. ‘질염’이라는 녀석은 ‘친하지 않은 친구’와 같이 요즘도 나를 종종 찾는다. 이제 나는 이 녀석을 적당히 다스릴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을 쌓은 것 같다. 이 글을 읽게 되는 여러분도 이 녀석을 정복하려 하지 말고, 다스릴 수 있는 정도의 내공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한참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간질간질 신호가 온다. 나 왔어, 나 왔다구. 손가락으로 슬슬 긁어대는 걸 애써 무시하려 해도 면 간지러움은 찌릿찌릿한 아픔이 되어 자신의 귀환을 알린다. 오랜만이야, 아니 본지 얼마 안되지 않았나?

    처음 질염을 앓게 된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지나치게 딱 붙는 스키니진을 입고 사타구니를 압박하였던 그 날인지, 대중목욕탕에서 한참을 몸을 지졌던 그 날 인지, 아니면 손으로 즐거움을 주던 그 날인지, 아니면 그냥 몸이 너무 피곤해서 면역력이 떨어졌던 그냥 그저 그런 날 중에 하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번 나타난 이후로 질염은 병원에서,여자들끼리 흔히 말하는 것처럼 '감기'마냥 자주 찾아왔다.

    질염이 질염인 줄 몰랐던 날들엔 어디에 여기가, 아래가 가려워요 말하기도 부끄럽고, 내 위생상태에 의심이 가고, 스스로가 불결하게만 느껴졌다. 엄마한테는 특히 더 말할 수 없었다.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그러느냐고 질타를 받을 것 같았다. 이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참고 혼자 열심히 물로 씻어만 대며 견디다가 나의 질염은 방광염과 골반염으로 심화되었다.
    보지를 뒤집어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에 번갈아가며 박박 씻어내고 싶을 만큼 가려움과 냄새, 소변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짜릿한 고통을 참다못해 산부인과를 찾아갔고, 나는 꼭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나는 왜 보송보송하게 질을 유지하지 못하였나..하고.

    물론 위생상의 문제도 아예 없다고 하진 못하겠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관리를 못한 때 뿐만 아니라 통풍이 되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 우연히 간 공중목욕탕에 심한 곰팡이성 질염(...)을 앓고 있는 사람과 같은 탕을 사용했을 때, 그냥 피곤해서 면역력이 저하되었을 때 감기처럼 질염이 온다고. 그건 때론 간지럽기도 하고, 때론 냄새가 나거나 색이 누런 냉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때론 바늘로 소음순을 쿡 찌르는 듯한 통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걸 알아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기며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고, 나의 그 곳에 습기가 차지 않게 잘 건조시켜준다.
    방치해두면 골반염이나 방광염 등 더 치료기간도 길고 실제로 많이 아픈 병으로 커지긴 하지만 그 전에 잘 치료만 해주면 금방 낫는 말 그대로 정말 스쳐지나가는 '감기'수준인 경우가 많은 게 바로 질염이라는 걸 나는 혼자서 몇 번을 앓은 후에야 병원을 통해 듣게 되었다. 여성들에게 아주 아주 흔한 병이라는 '질염'이라는 게 있다는 걸.

    스키니진을 많이 입는 어린 친구들부터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긴 사람들 중에 가벼운 가려움증을 동반한 질염을 앓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당신이 겪는 것은 단순한 가려움이 아니라 감기와 같은 병이고, 초기에 치료받으면 금방 회복할 수 있는 병이라는 걸, 성병이 아니고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질염에 자주 걸리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이렇게 자주 앓고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질병이니 수치스러워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당당하게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보낸다.

    나와 당신의 불청객 by 김이림
    어린 시절의 어느 습한 여름. 불현듯 아래쪽이 가렵거나 따갑기 시작했고, 팬티를 내리면 탁한 우윳빛 색깔의 냉이 찐득하니 붙어 나를 불쾌하게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팬티 속의 사정에 대해 당시의 나는 무지함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하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과거의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할 순간이었다. 야. 걔 진짜 끈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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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잘할게 by 치즈버거
    초등학교 4학년. 나는 피아노보단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라댔고 여름이 다가오던 무렵 엄마의 손을 잡고 동네 삼천리 자전거가게로 가 파란색의 멋진 두발 자전거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학원이 끝나면 동네방네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다 저녁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얼마 후,그 곳이 쓰라리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갔고, 그때가 내 첫 산부인과 방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자전거를 당분간 타지 말라는 엄벌을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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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나의 속사정 by 강마
    내가 ‘질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23살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였다. 겁에 질려있는 나에게 의사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질염’과의 사투를 예고했다. '스물셋'에 처음 산부인과를 찾았을 만큼 그때의 나는 내 몸에 참 무지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당당하게 들락거리는 곳이지만 여전히 산부인과는 두렵고 어려운 존재다. 감기처럼 쉽게, 자주 걸리는 게 질염이라지만 ‘나 질염 걸렸어!’라고 주위에 내 속 사정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불쾌한 손님이다. 사람들은 감기보다 ‘질염’이란 단어에 불순한 생각들을 많이 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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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by 익명의 Y
    지금이야 나이도 들만큼 들었고 적절한 지식이 생겨 질염이라는 질병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에 질염이 재발하여도 민망함이 덜하지만, 가장 처음으로 이 녀석을 만났던 때는 고등학생 때였다. 하교 이후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학원과 독서실...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면 이런 일정들에 익숙해질수 밖에 없었던 시절, 내 몸은 그렇지 못했다. 꽉 조인 교복치마에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삼각 팬티, 학생용 스타킹에 속바지에 위생이 신경쓰기 힘들었던 스케줄까지. 질염이 발생하기 굉장히 좋은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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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부제: 나의 질염투쟁기) by 시에나
    며칠 전, 여느 때처럼 인스타그램을 넘겨보다가 해피문데이 피드를 보게 되었다. 질염에 대한 기고문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아, 질염이라면 또 내가 할 말이 많지. 지긋지긋한 질염, 만성이 된 허리통증과 함께 늘 조심하고 있는 부분이 질 건강이다. 이십 때 중반까지는 질염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결혼하고 부부관계를 시작하면서 뭔가 가려움증과 분비물이 동반된 불편한 증세가 찾아왔다. 그 때는 대학원 석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제 때 못 먹고, 자주 밤을 새는 등 불규칙한 생활을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영향도 컸다. 질염이 심해지면 곧바로 방광염이 되었다. 소변 볼 때 타는 듯한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방광염으로 발전하기 전에 항생제를 투여해야 했다. 그래도 먹으면 그 때뿐, 생리주기를 따라 거의 매달 재발했다. 항생제를 계속 먹을 수도 없고,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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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염에 대한 이야기 by 마니또
    나에게 질염은 ‘친하지 않은 불편한 친구’ 같은 존재이다. 현재 나는 질염이 찾아와도 ‘아, 또 찾아 왔구나’ 라며 넘길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학생 신분이었을 때 ‘이 녀석’이 한번 씩 찾아올 때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인터넷을 뒤적였던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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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염 일기 by 프로골골러
    한참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간질간질 신호가 온다. 나 왔어, 나 왔다구. 손가락으로 슬슬 긁어대는 걸 애써 무시하려 해도 면 간지러움은 찌릿찌릿한 아픔이 되어 자신의 귀환을 알린다. 오랜만이야, 아니 본지 얼마 안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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