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월경용품의 역사

by 김디제이
20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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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문데이 생리대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이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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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다 피 흘리는 모든 월경인들에게는 월경용품이 필요하다. 불편함과 불안함 사이에서 어떤 월경용품을 골라야 할지 막막할 때면 짜증이 났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 피 흘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왜 온전히 나의 몫일까. 한숨을 쉬다 보면 ‘인류의 역사상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달마다 꼬박꼬박 피를 흘려 왔는데 뭐가 이리 발전한 게 없을까?’로 생각이 옮겨가곤 했다.

자, 오늘은 한국 근현대로 시공간을 한정해 월경용품의 역사를 살펴보자.

 

생리대

일회용 패드형 생리대가 국내에서 상품화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니, 사실상 5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여든일곱 해를 살아오신 나의 외할머니가 월경하던 시절에는 월경을 처리할 방법이라고는 기저귀 감으로 직접 만든 천생리대를 고무줄이나 끈으로 고정해 사용하는 방법뿐이었다. 1971년도에 유한킴벌리에서 내놓았던 초기 모델도 앞뒤에 끈이 달려 있어 벨트로 고정해야만 했었다. 끈이 필요 없는 접착식 생리대는 그로부터 약 5년 뒤에 출시되었다.

일회용 패드형 생리대의 초기 모델. 끈 고정이 필요했다.

일회용 패드형 생리대의 초기 모델. 끈 고정이 필요했다.

출시되었다고 해도 모두가 바로 일회용 생리대를 썼던 것은 아닐 테다. 김보람 감독님의 <피의 연대기> 영화를 보고 돌아온 날 엄마와 이런저런 월경 수다 시간을 가졌었는데, 1963년 셋째 딸로 태어난 엄마도 언니들이 천 생리대를 사용하던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사용한 생리대는 핏물을 빼기 위해서 물에 담가 두었다가 빨래를 하는데 담가만 두고 바로 빨지 않아서 언니들끼리 얼른 빨라고 싸우던 장면이 기억난다고. LG전자에서 최초의 세탁기를 출시한 게 69년이라고 하니, 생리대를 포함해 여성이 빨래 노동에서 해방되기 시작한 시기가 비슷하다 볼 수 있다.

자유생리대 뉴 후리덤의 등장

자유생리대 뉴 후리덤의 등장

패드형 생리대의 점유율이 출렁이는 사건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날개형 생리대의 출현이었다. 1986년 P&G는 일자 생리대에 날개를 단 올웨이즈(Always) 모델을 내놓아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날개형이 기본이지만 처음 나왔을 때는 큰 관심을 끌었던 것이 이해가 간다. 속옷에 고정되는 정도나 샘 방지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한 디자인이니.

 

탐폰

놀라운 사실 하나는 70년대 국내 월경용품 시장에 패드형 생리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태평양 화학에서 출시한 아모레 탐폰과 동양 제약의 템포가 있었다. 당시 탐폰 광고의 일부를 발췌해 읽어보자.

1970년대 태평양 화학 아모레 탐폰 광고

1970년대 태평양 화학 아모레 탐폰 광고

그러나 세상도 달라져 ‘패드’가 ‘개짐’을 대신하게 되었고 그것도 이미 옛이야기가 되어 이제 ‘탐폰’ 이라는 새로운 생리처리방식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기에 이르렀읍니다. 참- 편리해진 세상입니다.

 

저 당시 광고주는 탐폰의 세계적인 유행이 한국에서도 번져나가기를 바랐겠지만, 미국이나 유럽지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탐폰 사용률은 2020년 현재까지도 낮은 편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동안 한국 시장에 도전했다 사라진 탐폰 브랜드도 꽤 존재할 것이다. 예를 들어, 탐폰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플레이텍스도 보령제약이 국내에 수입해 왔다가 버티지 못하고 철수했다.

탐폰 사용률이 낮은 경향성은 아시아 전반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2007년 기준 국내 월경용품 시장에서의 탐폰 점유율은 약 5%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업계에서 체감하는 탐폰의 시장 점유율은 크게 높아지지 않았다.

2019년 10월, 다소 정체된 듯 보이던 탐폰 시장에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해피문데이 탐폰이다. 2013년을 마지막으로 2019년까지는 국내 탐폰 시장에 새로운 브랜드 제품이 출시된 기록이 없다. 자그마치 6년 만의 신규 브랜드인 셈이다. 나는 제품 기획 및 개발 단계부터 참여했다.

제품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안전한 월경용품의 다양한 선택지 확보였다. 국내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날개형 흡수체, 바이오 플라스틱 어플리케이터, 라이트 사이즈 등 보다 폭넓은 탐폰 옵션을 제시하겠다는 마음으로 면밀하게 준비했다.

해피문데이 탐폰

국내 6년만에 등장한 신규 브랜드, 해피문데이 탐폰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내게 필요한 옵션을 제대로 갖춘 탐폰을 구하려면 해외 직구까지 해야만 하는 불편함을 끝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유한킴벌리의 화이트 탐폰과 동아제약의 템포로 양분된 독과점 탐폰 시장에서 해피문데이 탐폰이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를 소망한다.

 

월경컵

삽입형 생리대 이야기로 넘어왔으니 월경컵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모양의 월경컵을 1937년에 발명해 특허 내고 상용화했던 여성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레오나 차머스(Leona Chalmers). 그는 <The intimate side of a woman’s life>라는 책에서 월경컵을 소개하고, 접어 삽입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고 있다. 초경가이드 북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ebay를 뒤져서 실물 책을 손에 넣었다. 만날 수는 없으니 그가 적은 책이라도 :)

The intimate side of a woman’s life

<The intimate side of a woman’s life>

1937년으로부터 약 80년이 흐르고 나서야, 월경컵이라는 월경용품의 존재가 한국의 여성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월경컵의 사용률이 낮은 점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 공식적으로 판매 가능한 월경컵’이 한국에서는 2017년 12월에 처음 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월경컵의 이름은 페미사이클(Femmycycle). 페미사이클의 출시 이후로 한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월경컵의 선택지가 그 사용률 대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눈치챈 분들이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월경용품이 판매되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승인이 필요하단 점을. 한국에서 월경용품은 ‘의약외품’으로 분류되어 식약처 기준에 의해 관리된다. 관리를 위해선 ‘기준’이 필요한데, 월경컵은 그 기준이 미처 준비되어 있지 못해 최초 허가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월경컵 이외에도 식약처의 허가를 기다려 온 다양한 월경용품들이 있다. Thinx는 2013년 뉴욕에서 설립된 회사로, 월경혈을 흡수하는 속옷을 내놓았다. 그 후 국내에도 스스로를 ‘생리팬티‘라고 부르지 못하고 ‘그날, 대자연’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에둘러 광고하는 제품들이 나타났다. 식약처로부터 ‘생리혈 위생처리 제품’으로 인증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최근 한나센스 팬티가 ‘생리팬티’로 식약처 신고가 완료되어 판매를 시작했다.

 

더 나은 월경을 위해

누군가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2017년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를 기점으로, 사람들은 천 생리대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패드형 생리대 카테고리에서도 순면 생리대 혹은 유기농 순면 생리대의 점유율이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빠르게 발맞춰 대나무, 콩 등에서 뽑아낸 재료를 사용한 제품들도 ‘천연'을 앞세우며 나타나고 있다. ‘흡수체까지 순면이고, 빨아 쓰면 다 안전한 걸까’, ‘유기농이라고 적혀 있으면 다 비싼 값을 하는 것일까’ 등 어디까지가 마케팅적인 수사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생리 디스크, 마리화나 탐폰, 다회용 어플리케이터 등 다 언급하지 못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또 사라지고 있다. 국내와 해외의 월경용품 역사 사이에 있던 다양성의 격차는 근래 아주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여성들이 각성하기 시작했다. 더는 생리대가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지 않는다. 더 나은 생리대를 상상하고, 각자의 월경 패턴과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생리대 말고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안다. 월경날의 경험은 개선되어야 하고 개선될 수 있다는 걸 믿는다.

앞으로 써나갈 10년의 역사가 지나간 50년보다 더 기대되는 이유다.

이 글은 2019년 3월 11일에 한국 월경용품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ize 우먼스플레인 코너에 실렸던 기사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Reference
  • "1970년대∼1990년대 생리대 광고 담론과 여성", 노지은, 여성과 역사 21권, 2014
  • 이미지 출처: kobaco 광고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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