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은 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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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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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덜렁대며 살아온 편이다. 콘크리트, 아스팔트, 타일, 모래와 잔디를 아우르는 다종의 바닥에 물건을 떨어뜨리며 살았다. 나는 제일 아끼는 가방도 택배 상자처럼 끌고 다니는 데 익숙하고, 아침에는 높은 확률로 소파 틈과 화장실 선반 또는 베개 밑에서 안경을 찾아 낀다.

하물며 월경에 관한 한 뒤처리가 깔끔한 사람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월경을 시작하고 얼마간, 나는 생리대가 붙은 속옷을 세탁기 위에 올려둔 채로 나와버리는 정신머리 때문에 가족들에게 충격을 안기곤 했다. 피가 샌 속옷을 물에 담가두었다가 샤워하는 사이에 까먹고 나오는 경우도 흔했다.

나의 엄마 계향은 그걸 대신 빨고는 나중에서야 조심스레 일러주곤 했다. 왜 내가 처리하도록 놓아두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아빠가 볼까 봐, 하고 대답했다. 나는 낮아진 계향의 목소리로부터 그게 굉장히 창피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아빠 영빈이 그걸 대신 빤 뒤에 엄마가 볼까 봐, 라고 하는 일은 절대 안 일어날 거라는 사실 또한 직감할 수 있었다.

다들 그렇듯 나도 피가 샌 속옷을 빠는 법을 계향에게 배웠다. 반드시 찬물에 담갔다가, 세탁비누를 문질러 빠르게 비비기. 생긴 지 좀 된 얼룩에는 과산화수소를 묻혀서. 그러나 어떤 방법도 피가 묻은 직후에 빠는 것보다는 못하다는 사실.

성인이 된 지 오래지만, 나는 아직도 혈흔의 전문가는 못 된다. 혼자 살면서부터 나는 월경의 처리에 대한 기준을 대폭 완화해버렸다. 내가 일 년의 반 이상 틀어놓고 지내는 전기장판은 사적인 역사서가 됐다. 열선에 달궈져 갈색으로 굳은 핏자국은 3년 전의 것부터 일주일 전의 것까지 다양하다.

루프 시술을 받고 나면 빨랫거리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나오는 피가 아주 적어진 대신 월경과는 무관하고 불규칙한 출혈이 가끔 있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그럼 매일 생리대를 착용하고 자냐고 물었다. 나는 맨몸으로 자는 게 습관이 돼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다시 아침부터 빨래하는 것이 귀찮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그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거짓말이다. 나는 맨몸으로 자기 위해 아침 빨래를 감수하지 않는다. 그냥 맨몸으로 잔다. 피가 묻으면 묻은 그대로 둔다. 힘이 나면 빤다. 이미 늦어서 깨끗하게 지울 수 없을 때도 많다. 그래도 그대로 둔다. 자기 자비나 관용의 일환도 아니다. 귀찮고 바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처신, 센스, 요령, 지혜로움과 같은 가치가 월경과 결부되는 모습을 보아왔다. 대부분의 월경 용품 광고가 여성 소비자를 설득해 온 방식도 비슷하다. 월경하는 당사자의 번거로움과 고통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는 것과 비등하게, 어쩌면 그보다도 더, 외부에서 보기에 월경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월경 경험을 약속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월경은 수치스러운 것, 숨겨야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강화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고 흰 스커트와 가벼운 기지개, 뽀송한 미소를 ‘그날’이나 ‘비밀’, ‘마법’ 같은 단어와 결부시키는 생리대 광고를 우리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새 시대의 광고가 월경하는 당사자의 몸이 겪는 경험과 필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자연스럽고 고무적인 변화다. 최근의 생리대 광고들은 사회적 시선에 거슬리지 않도록 월경을 숨기고 표백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무의식적으로 조장하는 대신, 실제 여성의 월경 양상을 적극적으로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월경은 피가 쏟아지는 일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탄로 날까 강박적으로 파란 시약을 사용하던 기존 광고들에 맞서 빨간색을 전면으로 내세우기도 하고, 금기시되던 ‘생리’라는 단어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태도도 훨씬 날카롭고 결연하다. 월경하는 몸이 실제로 통과하게 되는 경험이 어떤지 똑똑히 보라는 식이다. 산뜻하고 안심되는 월경 같은 건 없다. 월경은 축축하고 비리고 가렵고 끈적하고 검붉으며 짜증난다.

생리대의 장점을 강조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생리대의 주요 기능이 외부 시선으로부터 월경을 감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불편함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최근의 마케팅 추세로 보인다. 가령 똑같이 냄새가 덜 나는 생리대가 출시됐다고 하더라도, ‘생리 냄새는 주변인을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부정적 암시를 주는 대신에, 화학 물질을 최소화하고 신체에 더 안전한 소재를 사용하는 데서 오는 부수적 효과로서 냄새 감소를 설명하는 것이다. 최근 월경 용품 회사들의 정책과 제품은 무엇보다 여성 당사자의 건강과 안녕이라는 목표를 향해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생리대 정기 배송 정책, 생리대 없이 입고 뒤척여도 새지 않는다는 생리 팬티 등등. 이렇게 보면 머지않아 자신도 월경하는지 모를 만큼 수월하게 월경하는 미래가 머지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월경 산업의 발전과 성장을 환영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월경 용품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말하자면 월경하지 않는 듯이 월경하는 것이 점점 더 쉬운 일이 될수록 나는 남몰래 불안해진다. 어쩌면 그런 시대에는 티 나게 월경하는 것이 전보다도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될까. 월경이 티 나기가 더 어려운 일이 된다면. 생리대, 생리컵, 진통제, 그 외 각종 월경 관련 제품의 개선이 너무나 비약적인 나머지, 그 제품들을 사용하기만 해도 무월경이나 다름없는 일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그러한 제품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소비자와 아주 가깝다면. 심지어 가격도 합리적으로 형성되어있다면. 그런 시대에서조차 ‘얼룩 제로’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도 없이 몰지각한 일이 될까.

소비자가 월경에 대한 부정적 낙인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생리대 광고, 그리고 소비자가 자신의 건강과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생리대 광고, 두 광고는 마케팅의 차원에서는 전혀 다르다. 반면 두 광고 모두 ‘월경은 불편하고, 이 불편은 줄일 때 더 좋다’는 전제만큼은 똑같이 공유하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그 회사의 제품을 쓰는 일이 안 쓰는 일보다는 좋아야 하니까. 이는 산업의 관점, 즉 소비자를 설득하려는 시장의 관점에서는, 월경과 월경에 따르는 부수적 현상들을 제거나 감소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또 필요하기 때문이다. 월경전증후군을, 월경통을, 월경혈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 궁리하지 않고서 월경 산업이 발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월경은 개인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특질은 아니다. 생리대 역시 개인이 취향에 따라서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품목은 아니다. 월경은 애초에 국민 건강권의 차원에서 공적으로 다루어졌어야 하는 문제다. 지금처럼 ‘현명한 소비자’로서의 월경하는 개인에게 월경에 드는 모든 비용을 부과하는 현상은 우리가 월경하지 않는 몸만을 표준으로 하는 시스템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허물어진 자궁 점막과 피를 주기적으로 질을 통해 배출하는 몸이 모든 사회적 관계의 한 표준으로 당연한 듯 포함되어있는 세계를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런 몸은 어떤 온도에서, 어떤 의자에 앉아, 얼마의 시간 동안, 얼마만큼의 일을, 어느 정도의 완성도로 해내더라는 통계적 합의에 기반하여 노동 환경과 목표가 전면적으로 재조정되는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월경에 유무형의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로서, 우리는 얼마든지 시장에 우리의 다양한 불편과 고통, 피로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품의 개발 또는 시각의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월경하는 몸으로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 불편, 고통, 피로가 어디서 유래하는지도 물을 필요가 있다. 불편함은 월경의 본질적 속성일 수도 있지만, 월경하는 신체와 정신이 사회와 상호작용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배가 아프면 집에 가도 좋으며 그러한 선택에 따른 불이익은 어떤 경우에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건조한 매뉴얼이 이미 존재한다면, 그때에도 지금처럼 많은 여성이 월경통을 ‘~할 수 없는 고통’으로 묘사하는 일이 자주 일어날까? ‘일시적으로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는 사람’의 면목 없음을 체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없이도 월경통을 겪을 수 있다면, 월경통은 지금과 같은 정도로 피로할까? 만약 월경하는 몸이 세계의 표준이라면, 옷에 새어 나온 피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최근의 ‘깔창 생리대’ 사건을 보자. 월경하는 몸을 표준으로 하는 시스템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생리대 지원을 보편적 복지의 차원에서 논의하고, 질 좋은 생리대를 무상 보급할 수 있는 물질적 제반 조건을 구축하는 일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한편, 우리는 그가 끝내 깔창을 사용하겠다고 결정하는 데까지 소모된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자원 또한 살펴야 한다. 그는 왜 깔창을 사용한 걸까. 깔창은 위생적이지도, 편안하지도 않은데. 그가 깔창을 사용하지 않아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란 건 고작 피가 새는 것, 그게 다인데. 월경과 월경의 처리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그로 하여금 전혀 생리대를 대체할 수 없는 물품을 굳이 사용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면, 그러한 낙인을 없애는 것은 무상 생리대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동등하게 시급한 과제가 된다. 왜냐하면, 월경에 드는 경제적 자원뿐만 아니라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자원을 분담하는 것까지가 시스템의 몫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이 시스템을 누리는 동시에 시스템을 이루기도 하는 한, 나는 우리가 서로의 이웃으로서 낙인찍힌 몸들이 견뎌야 하는 사회적 수치심의 총량을 덜어주어야 할 의무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태도와 표정을 고안할 의무가 우리의 몫으로 주어져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어떤 학생에게도 생리대를 살 수 없어서 교복 치마에 피가 묻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고, 그가 느꼈을 당혹감과 수치심을 이해하고 또한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설령 생리대가 없어서 교복 치마 바깥으로 피가 번진다 한들 그날이 그의 최대 악몽이 될 필요는 없다고도 말할 수 있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말해야만 한다. 월경하는 듯이 월경해도 된다고. 생리대가 없으면 차라리 흐르게 하라고. 당신이 쭈뼛거릴 필요는 없다고. 그가 마주하게 되는 모든 얼굴들이, ‘피인가 보다’의 표정 이외에 어떤 공감도, 안타까움도, 힐난도, 분노도 섣불리 표현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합의할 수도 있다.

조심스럽게 고백하건대, 나는 월경이 얼마나 큰일인지 이해하는 세심한 언니들 앞에서보다, 월경이 왜 큰일이어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무심한 언니들 앞에서 안심한 적이 더 많다. 피는 피이고 얼룩은 얼룩일 뿐이라는, 다소 심드렁한 태도로 월경을 대하는 언니들. 혼자서 다 편견을 극복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다만 좀 귀찮고 바빴을 뿐인. 체력이 모자라서 그냥 그렇게 살았을 뿐인 언니들의 쪽수가 더 많아진다면, 그래서 사회가 하는 수 없이 그들에게 적응해야 한다면, 우리는 얼떨결에 월경을 좀 더 가볍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예를 들면, 가랑이 사이로 피가 흐르는 채로 달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일부러 그럴 것까진 아니고, 달리고 싶은 어떤 날은 피도 좀 나오게 마련이니까. 달리기를 중단하고 싶지 않다는 가볍기 그지없는 이유로 그래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식구들이 아직 베개 모서리에 코를 묻고 있을 새벽, 조용히 이불을 빠져나와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을 받아본 적이 있을 이들을 생각하며 쓴다. 그들이 조금 더 쿵쾅쿵쾅 걷기를, 무자비한 졸음을 더는 이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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