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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음식인데 맛이 달리 느껴진 지 며칠이 되도록, 감지하지 못했다. 날짜를 더듬어 보고 진즉 시작했어야 할 월경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혹시?’ 하는 생각에 남편을 닦달해 급히 임신테스트기를 구했다.
그날, 두 줄이 뜬 테스터기를 들고 잠시 멍-했다. 다음날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화면에 보인 눈사람 모양의 형체를 눈으로 보고도, “임신입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귀로 듣고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실감하든 하지 않든 나는 임신을 한 것이었다. 그날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여러 변화 속에서도 내가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아졌다’는 것. 임신하기 전까지는 내 인생 계획이 있었는데 임신을 확인한 후로는 출산을 고려해 계획을 수정해야 했고, 성인이 된 후로 ‘OOO 씨’로 불려왔는데 산부인과에 가면 ‘엄마’로 불렸다. ‘엄마 이리 오세요’ ‘엄마 들어가실께요’ 등. 내가 통제하는 나의 몸이었는데, 이제 나만의 몸이 아닌 아이가 자라는 터가 되었다는 이유로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걱정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지인이, 어떨 때는 버스정류장에서 처음 본 아주머니가 내게 식사, 영양공급, 운동, 적절한 감정 상태에 대해 조언하는가 하면 처음 보는 할머니들이 임신했네~ 하면서 내 배에 손을 대는 일도 많았다.
임신은 분명 신기하고도 경이로운 경험이었지만 한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내가 나에 대한 통제력을 예전보다 잃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어색하고 신기했지만, 기다리던 임신이었기에 나는 이 역할에 적응해나갔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고, 태교에 대한 책도 구해 읽어보았다. 알아보니 우리나라 산모들이 따라가는 대략의 출산 경로1)도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기회가 있었는데, 바로 임신 기간에 다른 여성들의 출산을 간접적으로 목격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회사에 다니다 개인적인 계기로 다시 대학에 입학해 간호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임신 초기가 마침 산부인과 실습 시기와 겹쳤다. 실습 과정의 일환으로 다른 여성들이 병원에서 분만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경험은 나로 하여금 조금 다른 방식의 출산을 꿈꾸게 만들었다.
여러 출산을 지켜본바 나는 병원 출산은 출산 자체의 안전성은 보장되나, 몇 가지 단점이 존재한다고 느끼게 됐다. 첫째, 의료 처치가 과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 대형 병원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병원에서의 출산은 유도분만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진통이 시작되면서 출산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대형 병원의 경우 여러 이유2)로 유도분만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의료적으로 필요한 처치라고는 하지만, 분만 유도제로 자극을 주어 분만이 시작되게 하고 유도된 아픔을 진정시키기 위한 무통 주사가 또 투여되는 일련의 과정이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으로 느껴졌다. 일부 경우이긴 하지만 무통 주사 투여 후 통증은 줄어들었어도 하반신에 힘이 실리지 않아서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보았고, 태아의 머리가 질을 통과하는 과정에서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회음부를 수술 가위로 절개(회음부 절개3))하고 아이를 낳은 후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산모도 목격했다.
둘째, 이 과정에서 산모들의 행복감은 그리 보장되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다. 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 등은 의학적으로 그 필요가 검증된 처치이겠지만,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태아를 모체 밖으로 꺼내기’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관장과 제모 시 산모들이 느끼는 굴욕감이나, 회음부 절개로 인한 후유증 등 산모의 무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처치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병원에서의 출산은, 사람이 가진 자연스러운 능력을 활용하여 아이를 낳게 한다기보다는 유도제와 진통제의 연이은 투여, 분만 직후 신생아와의 격리 등 태아를 모체로부터 최대한 안전하고 신속하게 빼내는 일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더 자연스럽고 내가 주도할 수 있는, 덜 의료화된 출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출산은 ‘질병’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당연히 병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로 의료화 되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병원이 아닌 곳에서의 출산도 가능하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자연출산’이라는 방식을 택해보기로 했다.
자연분만
전통적인 방식의 분만 형태제왕절개
복부절개를 동반하는 외과적 수술을 통해 분만하는 것자연출산
자연분만을 하되 의료적 처치를 최소화한 분만 형태검색해보니 자연출산을 할 수 있는 곳은 자연출산 전문병원, 일반 산부인과지만 자연출산에 가까운 자연분만을 도와주는 곳, 조산원 이렇게 3가지 분류가 있는 것 같았다. 자연출산 전문병원은 의사에 의해 진행되는 자연출산이라 안정감이 있었고 의료적 처치를 최소화하고 있었지만, 보통 산부인과 분만비용(60~100만 원 사이)에 비해 너무 높은 비용(300~400만 원)이 부담되어 제외시켰다. 일반병원에 비해 빠르게 출산을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산모를 받을 수 없어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은 것인가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또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자연스럽게 출산할 수 있게 도와주는 ‘르봐이예 분만’이 있다고 하여 검토했는데 분만실을 어둡게 하고 음악을 트는 정도일 뿐이어서 선택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조산사가 출산을 돕는 조산원에서의 출산방식을 선택했다. 현행 의료법4)에 따르면 조산사는 ‘간호사 면허를 가지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의료기관에서 1년간 조산수습 과정을 마친 자 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외국의 조산사 면허를 받은 자 중 조산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료인’으로서, 산과 의사 외에 아이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조산원에서의 출산은 아무래도 병원이 아닌 곳에서 의사 없이 출산하는 것이다보니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가 제대로 될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여러 조산원 중에서도 연계된 종합병원 산부인과에서 막달 검사5)를 받게 하여 조산원에서 낳을 수 있는 상태가 맞는지 마지막까지 점검하고 자연출산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자연출산을 진행하는 곳, 출산 중에 의료조치가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 막달 검사를 받았던 종합병원으로 곧바로 이송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곳, 3명의 조산사가 공동경영을 하고 있어 유사 시 대처가 가능한 곳을 선택하면서 불안감을 어느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연출산에 대한 결정과 실행이 쉽지는 않았다. ‘의사 없이 출산하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남편이 반대했지만, 곧 이해해주었다. ‘임신 기간 동안 일반 산부인과에서 다달이 필요한 모든 검사를 받으면서 태아가 정상 범위에 있는 경우에만 자연출산에 도전해보고, 그렇지 않다면(작은 이상이라도 있으면) 당연히 병원에서 낳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다고 봤다. 8개월까지 일반 산부인과를 다니다가 그때까지의 태아 상태가 정상이어서 자연출산을 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고, 마음에 뒀던 조산원에 연락해서 ‘이 조산원에서 출산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조산사와의 상담을 통해, 조산원에서도 병원환경에서 출산해야 할 산모에게는 무리하게 자연출산을 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욱 안심할 수 있었다.
조산원에서의 출산은 여러모로 예비 부모의 참여가 많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28주차에 조산원으로 옮긴 이후 우리는 조산원에서 출산하려면 수료해야 할 교육들을 바삐 수료해야 했다. 내가 선택한 조산원은 예비 산모에게 영양/태교 교육, 남편동반 자연출산 준비교육, 출산리허설 등의 교육을 받게 했는데, 자연스러운 출산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들이었다.
식이요법은 태아 몸무게가 너무 늘면 자연출산하기 어려운 난산이 되기에 필요했고, 오일로 하는 회음부 마사지 연습은 회음부 피부조직을 유연하게 해 출산 도중 회음부가 찢어지는 일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출산계획서 제출은 산모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환경을 조산사와 의료진들에게 미리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쉽지도 않고 시간을 내야 하는, 때로는 귀찮은 일들 이었지만, 수동적인 환자 입장이 되는 병원에서의 출산과는 달리, ‘내가 만들어 가고, 내가 참여하는 나의 출산’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보람되었다.
드디어 대망의 출산의 날. 일반 산부인과에서는 진통할 때 다리걸이가 있는 반 침대 / 반 의자에 누워 진통하지만, 조산원에서는 옆으로 누운 자세나 의자에 앉는 자세 등 여러 자세를 바꿔가면서 진통할 수 있었다. 원하면 수중출산도 가능했다. 보통의 산부인과에서 분만 과정 시 남편은 옆에서 보고 있거나 밖에 있다가 마지막에 탯줄만 자르러 들어온다면, 자연출산에서는 남편이 적극적으로 출산에 참여한다. 조산원 사전교육을 통해 통증을 경감시켜주는 마사지와 아이 돌보기 등을 배운 남편은, 분만 과정 내내 터치로 통증 경감을 도왔다. 임신 기간 내내 들었던 익숙한 음악을 틀고, 산모와 아이를 위해 조도를 낮춘 어두운 방 안에서, 분만을 돕기 위한 최소한의 조명인 헤드랜턴을 머리에 낀 조산사님의 도움으로 나의 아이는 세상 빛을 보았다.
분만 직후 조산사는 남편에게 웃통을 벗고 갓 태어난 아기를 안게 했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남편이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캥거루 케어를 하면서 조곤조곤 아기한테 얘기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무척 기뻤다. 일반 병원 분만이었다면 아기가 신생아실로 갔겠지만, 조산원에서는 분만 직후에 바로 모유 수유를 시도 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아이가 태어난 방에서 온전히 가족이 3일간 함께 지내며 하나가 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수액투여를 받은 것이 아니다 보니 몸이 부어있지 않아서 다음날부터 일어서서 돌아다니는 데 별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음부 불편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 나를 보고 친정엄마가 놀라셨다. 엄마는 나를 일반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으로 낳으실 때 회음부 절개를 했고 꿰맨 자리가 너무 아파서 6개월 동안 제대로 못 앉으셨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산후회복에 큰 무리는 없었다.
출산을 함께한 동지인 남편이 나를 달리 보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병원 아닌 곳에서 낳는다고 할 때 반대했었는데, 정말 결심대로 평화롭게 아이를 낳은 내가 존경스럽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출산 과정을 수동적으로 지켜본 것이 아니라 정말 '함께 했기에' '같이 낳은 느낌이 든다'는 얘기도 했다.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출산을 온전히 남편과 내가 주도적으로 해냈다는 자신감이었다. 물론 조산사라는 조력자가 있었지만, 수동적인 환자로서 대해지지 않고, 주도적으로 준비해서 나와 아이의 온전한 힘으로 그날을 이루어냈다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첫 출산을 한 지 5년이 흐른 지금도 이 생각은 유효하다. 작년 우리 부부의 둘째도 같은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태어났다.
모든 출산이 자연출산일 수는 없다. 자연출산은 모든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니다. 신생아 중환자실과 대형 종합병원 의료진의 케어를 필요로 하는 출산과 산모 상태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전치태반이거나 아이가 탯줄을 목에 감고 있거나 쌍둥이인데 자연출산 시도는 위험하다고 본다. 당연히 병원에서의 분만을 택해야 할 것이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출산 중 사망하는 여성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초음파 등 의료기술의 발달로 산전 검진을 통해 의료기술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질환이나 이상은 임신 기간에 대부분 발견된다. 이는 현대 의료기술의 발전 덕분이며, 이러한 기술 발전은 각 개인의 필요에 맞게 충분히 활용되어야 한다.
자연출산이 다른 출산 방식에 비해 우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출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하여, 다른 형태의 출산을 ‘비자연출산’이라 부를 것도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지인의 자연출산 사례를 듣더니, 병원에서 진통제 맞아가며 낳은 자기 아이에게 미안한 기분이라고 했는데 당치 않다. 보통 자연분만이라고 하는 질식 분만이든 제왕절개 분만이든, 출산의 경이로움과 기쁨의 빛이 바래겠는가?
그러나 의료기술의 발전과 현대의 병원 환경 속에서, 출산이 자연스러운 인간사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질병으로, 아이를 낳기 위해 응당 겪어야 할 진통은 무통 주사에 의해 제거되어야 장애물로, 자연스레 시작되어야 할 진통은 병원 스케줄에 맞춰 유도제에 의해 시작되는 것으로만 여겨지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은 생각해봄 직하다고 생각한다.
요람부터 무덤까지, ‘병원에서 나서 병원에서 죽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 되어버린 지금, 조금 다른 방식의 시도도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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